15년전 한국 외교관의 명쾌한 ‘독도 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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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naeil.com/News/politics/ViewNews.asp?sid=E&tid=3&nnum=600289 

 

 15년전 한국 외교관의 명쾌한 ‘독도 문답’

2011-04-04 오후 12:51:47 게재

국제재판소행·무주지설 조목조목 반박 … 일본 입장 전하러 온 프랑스 법학자도 설복받고 떠나
최근 일본의 독도 왜곡에 대한 국제법·역사적 반박자료 역할

일본이 교과서 검정과 외교청서 발표를 통해 독도에 대한 역사왜곡을 되풀이하고 있다. 격앙된 국내 여론과 대조적으로 일본 주장의 근거와 그 논리를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당연히 일본 논리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도 적다. 

1996년 6월 14일. 독도와 관련, 일본 입장을 대변하러 온 프랑스 학자가 한국 외교부 실무자와 마주 앉았다. 프랑스 국립극동학원 동경지부의 티에리 모르망(Mormanne) 박사와 홍승목 외교부 국제법규과 1등서기관(현 네팔 대사) 사이의 대화를 보면 얼마나 일본의 주장이 터무니없는가 명쾌하게 알 수 있다. 모르망 박사 역시 홍 서기관 설명을 흔쾌히 수용하며 감사를 표하고 떠났다. 

독자들의 보다 정확한 독도 이해를 위해 홍 대사의 허락을 얻어 당시 대화록을 발췌해 싣는다. 대화록 전문은 홍 대사 블로그 또는 내일신문 홈페이지(naeil.com)에서 볼 수 있다. 

<편집자 주>

모르망 : 일본은 독도분쟁을 재판으로 해결하자고 하고 한국은 이를 반대한다. 한국은 법적으로 자신이 없나? 

홍승목 : 그렇지 않다. 한국은 '국제사법재판소(ICJ)ICJ'라는 특정 법정에 가는데 대해 이견이 있었을 뿐이다. 일본은 ICJ에 의한 분쟁 해결을 주장하면서 중국과 분쟁이 있는 센카쿠 열도(중국명:댜오위타이)는 ICJ로 가자고 하지 않는다. 

자기네가 실효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센카쿠 열도는 안되고 상대방이 점유하는 경우만 재판에 가자는 것은 무슨 논리인가? 더구나 '북방 영토(쿠릴열도)' 문제는 러시아가 점유하고 있는데 왜 ICJ로 갖고 가지 않나. 오히려 러시아는 ICJ로 가자고 하고 일본은 반대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일본은 ICJ에 판사가 있는데 한국은 없으니, 한·일간 문제는 ICJ에 가는 것이 명백히 자기에게 유리하고 중국이나 러시아는 각각 ICJ에 판사를 두고 있으니 불리하다고 보는 것이다. 

또 일본은 내심 보수적인 ICJ가 적어도 1905년 일본의 독도편입 당시에는 식민주의에 의한 조치도 합법이라고 판단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모르망 : 조그만 섬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일본은 냉정한 데 비해 한국의 감정은 매우 민감하다. 

홍승목 : 일본은 당초부터 자신의 영토가 아니니까 ICJ에 패소해도 잃을 게 없다는 계산 때문이다. 일종의 '부담없는 게임'이다. 한국을 식민 지배했으니 자료입증 측면에서도 월등 유리한 입장이고. 

모르망 : 일본은 그렇다고 치고, 한국 여론은 왜 그렇게 과민한가. 

홍승목 : 한국민에게 독도는 '주권과 독립의 상징'으로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20세기 초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 때 제1단계로 1905년에 독도를 빼앗고, 그 5년 후에 제2단계로 나머지 전국토를 빼앗아 식민지화를 완성했다. 

일본이 "다케시마(竹島)는 일본영토" 운운하는 것은 한국국민에게 "너희는 아직 완전히 독립한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우리의 식민지"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독일이 지금 와서 프랑스더러 "
파리가 나치 독일의 점령에서 해방된 것은 인정해 주겠지만, 알자스·로렌은 돌려받아야겠다"고 한다면 프랑스 국민이 점잖게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 재판으로 해결하자"고 하겠나?

모르망 : 태평양전쟁 후 1951년에 체결된 대일평화조약에서는 '제주도·거문도·울릉도'를 한국 영토로 명시하되 '독도'는 언급하지 않았다. 

홍승목 : 그것은 패전국인 일본에 대한 평화조약을 체결하면서 한국영토와 관련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부분만을 언급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해석이다. 명시된 섬들이 한국영토의 외측 한계를 뜻하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제주도 더 남쪽에는 마라도가 있다. 

모르망 : 한국은 일본의 '1905년 영토편입조치'가 무효라고 주장하지만, 독도가 1905년 이전에 이미 한국의 영토라는 근거는 충분한가?

홍승목 : 일본은 "독도가 1905년까지는 무주지(無主地:주인없는 땅)였으므로 어느 나라든 선점할 수 있었다"는 입장으로 식민주의적 발상이다. 독도가 한·일 양국 사이에 있고 수 세기전부터 양국민이 존재를 알면서 어업을 해왔다면 두 나라 중 한 나라의 영토라고 보는 것이 상식이다. 독도는 그 자체의 경제적 가치는 거의 없는데도 영유권을 입증할 역사적 기록은 다른 유사한 섬에 비해 풍부하다. 이것만으로도 무주지라는 논리는 당연히 배제되어야 한다. 

모르망 : 1905년 이전 한국 정부가 독도를 영토로 인식한 증거는?

홍승목 : 1905년 일본이 비밀스레 영토편입 조치를 하고 외교권을 탈취한 뒤 1906년 일본관리를 울릉도에 파견해 군수에게 "독도는 이제 일본영토가 되었기에 독도를 둘러보러 왔다"고 통보했다. 이에 울릉군수는 중앙정부에 '울릉군 소속인 독도'에 대해 일본 관리가 통보해 온 내용을 보고하고 내용을 조사토록 건의한 바가 있다. '이제부터는 일본 영토'라는 일본 관리의 통보와 '본 울릉군 소속인 독도'라는 한국 관리의 보고가 당시의 양국 정부의 영유의식을 정확하게 반영한다. 일본 정부는 현재 "이 보고서의 원본이 없으므로 믿을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또 1900년에는 정부가 취한 조치로서 "독도를 울릉군수의 관할로 한다"는 내용이 공포된 기록이 있다. 

모르망 : 일본 고지도에 독도를 일본영토로 표시한 것이 많은데?

홍승목 : 일본 고지도의 공통점은 울릉도와 독도를 한꺼번에 한국영토로 표시하거나 혹은 한꺼번에 일본영토로 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기록에서도 독도에 관해서는 반드시 울릉도에 곁들여 언급되고 있다. 일본이 '울릉도는 한국영토, 독도는 일본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은 자신들의 역사와도 단절된, 20세기의 새로운 주장이다. 

모르망 : 일본은 독도가 '1905년 편입조치 이전부터 일본의 고유의 영토이고 1905년에는 시마네 현에 편입시켰을 뿐' 이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안다.

홍승목 : 일본이 1905년에는 독도가 '무주지'라고 하면서 영토편입을 했다가 이제 와서 '고유영토'라고 주장하는데 그러면 '언제부터' 일본 영토라는 말인지, 주장 근거는 무엇인지, 1905년에는 왜 '무주지'라고 선언했는지, 일본에 돌아가면 문의해 보라. 

독도에 관한 일본측의 최초의 기록은 1667년의 '온슈시초고끼(隱州視聽合紀)'인데 여기서 "울릉도·독도는 한국의 영토"라고 밝히고 있다. 일본은 사료에 울릉도·독도가 언급된 이유만으로 자기네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이라면 일본 책에 '프랑스의 파리'라는 기록이 많다는 이유로 언젠가 일본이 "파리가 일본 책에 기록되어 있으니 이는 일본의 영토라는 증거"라고 우길 때가 올 지도 모른다.

모르망 : 1905년에 분명히 '무주지'라고 하면서 '영토편입' 조치를 했나?

홍승목 : 1905년 일본내각이 독도에 관해 채택한 결정의 요지는 "영토편입을 하라는 어느 개인의 청원을 접수한 것을 계기로 … 검토한 결과 타국의 영토라고 인정할 근거가 없다고 판단되어 … 국제법에 영토편입으로 인정될 조치를 한다"는 것이다. 자기네의 영토가 아니었다는 점을 여러 가지로 밝혔다. 한국의 영토라는 사실이 너무 명백했기에 차마 '무주지'라는 표현조차 쓰지 못하고 '타국의 영토' 운운한 것이다. 

일본정부가 정말로 '무주지'로 인식해 영토편입을 하는 경우에는 이해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는 나라에 사전통보를 하거나 관보게재를 통해 나중에 문제가 되지 않도록 했다. 그런데 독도에 대해서는 가장 가까운 나라인 한국에 편입조치를 숨겼고 한국이 알게 될까봐 관보게재도 피했다. 도둑이 물건을 훔쳐가면서 주인이 알지 못하도록 조심한 것과 같다. 편입조치를 한국에 숨기려다 보니 일본국민조차 그 사실을 잘 몰라서 편입조치 후에도 독도를 계속 한국의 영토로 표시한 일본사료가 발견된다.

조숭호 기자 shch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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